[추천 광명文化人] 수필 - 나는 왜 악녀가 되었을까
[추천 광명文化人] 수필 - 나는 왜 악녀가 되었을까
  • 피플인광명
  • 승인 2019.01.0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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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카페 블랙 씨(CAFE BLACK SEA)' 대표.

강아지를 무척 좋아한다. 그래도 강아지의 혓바닥으로 내 손이며 어디든 핥는 것은 부담스럽다. 내가 개를 핥아줄 수는 없고 그에게 애정표현을 하고자 머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쓰다듬곤 한다. 그럴 때면 미친 듯이 핥아대는 개에게 더 이상의 스킨십을 멀리하고 손을 씻으러간다. 손을 씻고는 더 이상의 애정표현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면 한참을 아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다 체념하고는 앞발 위에 턱을 괸다.

내가 개를 좋아함에도 개의 입장에서는 나의 애정표현이 한정적이다. '나를 바라보는 개는 얼마나 애정에 목말라하는가'라는 생각을 한다.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이 반기는 나의 애정표현을 늘 부담스러워한다. 그 부담스러움이 내가 개에게 느끼는 부담감과 같은 것이라고 위로해볼까? 남편이 날 싫어하는 건 아니고 한정적인 표현력 때문이라고 위로해볼까?

눈곱이 붙은 부시시한 얼굴과 하늘로 치켜 올라간 머리로 첫인사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화장실 문을 열고 뚫어져라 폭포소리를 내며 썩은 향을 뿜어 내는 일이 아무렇지 않은 것. 양치를 하며 온 집안을 돌아다녀도 아무렇지 않은 것. 팬티조차 수건 한장조차 걸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 남들한테는 피곤해도 억지웃음이라도 짓지만 조금만 힘들어도 눈살을 찌푸리고 버럭 화를 내는 것. 징글징글해서 안 보면 살 것 같은데 하루라도 없으면 마음마저 허한 느낌을 주는 것.

모두가 잠든 어두운 새벽, 남편은 출근을 한다. 안쓰러워서 잘 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출근을 하고 등교를 하고, 아무도 없는 홀로시간에 나는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밥을 한다. 남편에게 나는 어떤 모습이 안쓰럽고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그이도 그런 마음이 생겨도 나처럼 그렇게 되질 않는 걸까.

그래서 답답하게도 아무 표현이 없지만 지금껏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왔을까. 살다보니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정작 서로에게 자유가 주어지면 그 자유를 풍만하게 누리게 될까. 초췌해진 모습으로 퇴근한 남편을 보고 측은함을 느낀다. 그래도 정작 따뜻한 한마디가 나오질 않는다.

어느날 초췌해진 남편 모습이 보여지는 일상이 일상이 아닐 때, 그 일상이 그리워 울상이려나?

 

나는 남편이 너무 싫다. 정말 싫다. 그래도 같이 살고 있다.

친구들 만나고 동창을 만나고 상가집은 빠짐없이 가면서도 딸아이가 고딩이 되도록 딸아이의 행사에 한 번도 참가해본 적이 없다.

친구들과 여름휴가 간다고 오전 일만 하고 와서는 서둘러 친구들을 따라 여름휴가를 간 적이 있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댄스공연이 퇴근 후에 있어도 관심 없다. 친구들과 하는 모임은 조기퇴근까지 하면서 딸아이 공연에는 말을 해줘도 말 한마디 없다.

한숨만 나온다. 남편을 좋아하려고 사랑하려고 애를 써봐도 그런 마음이 도대체 생기질 않는다. 전쟁터 같은 남편과의 삶을 겨우겨우 오늘도 살아내고 있다.

 

애들이 어릴 때부터 실한 등치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나같이 아빠가 잘 벌어야겠다는 소리를 많이 했다. 생활비에 무엇보다 크게 차지하리만큼 잘 먹어대는 식대만도 작지가 않다. 그런 가족을 부양하랴 온갖 애를 쓰고 들어오는 퇴근길 남편 얼굴은 누구보다 초췌해 보인다.

집에 들어오면 최소한의 동작으로 몸을 사리고 티비에 시선고정인 남편에게 티비 보는 정성으로 애들에게 10분의 1만이라도 대화를 하라고 하소연을 해도 남편은 그 일이 너무도 어려운 일인 척한다.

담배 피는 시간의 1프로라도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라 해도 허용하기 어려운 일인척한다.

동창회 가는 일, 지인 상가집 가는 일의 1프로만이라도 아이들과 교감을 바라지만 불가능한 사람인 척한다. 그런 척하는 사람에게 무던해 지기란 나도 쉽사리 되질 않는다.

그런 남편에게 난 늘 불만을 품고 산다. 그런 남편이 취미생활로 직밴(직장인 밴드)을 하고 있는 나에게 불만을 말할 때면 늘 따라붙는 코스언어가 있다.

"쳇! 돈 버는 것도 아닌데 밴드는 해서 뭐해? 밴드는 도대체 왜 하는 거야? 돈도 안 되는 일을"이라고 퉁명스럽게 말을 뱉어버린다.

그런 남편에게 화가 많이 나 있는 나는 대꾸도 않고 현관문이 부숴질 듯 문을 밀어붙여버리고 집밖을 나와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를 곳을 찾거나 안양천을 따라 한강까지 걷곤 하며 마음을 안정시키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돈도 안 되는 밴드는 해서 뭐하냐고 타박할 때가 있었다. 그 때 나도 정색하며 반문했다.

"어머~ 자기는 동창회 가면 돈 주나보지? 상가집 가면 돈 생기는 거야? 담배피면 돈 되나보지?"라고 반박했더니 남편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기막혀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나는 속 시원히 면전에 대고 깔깔 웃어댄다.

남편이 나무랄 때면 정면 돌파로 밀어붙여 버린 후부터는 추운 날 더운 날 어딜 가서 화를 식혀야하는지 방황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쌍스런 말도 입에 오르내리면서 깔깔대는 막가파 사이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늘 어처구니없이 승부 없는 싸움을 반복하며 산다.

 

나는 남편이 없다. 단지, 동거인이 있을 뿐이다. 나의 동거인은 내 뱃속 첫아기 진료 때 나의 곁에 없었다. 갓난아이가 새벽잠을 못 자고 울음을 터트릴 때 짜증뿐이었다.

내 동거인은 나와 내 아이와 살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함께 산다. 그는 나가지고 않도 나도 나갈 수가 없다. 나는 어떤 것이 지혜로운 삶인지 오래 전부터 잊고 산다. 자포자기하며 그냥 산다. 희망도 없고 재미없는 삶을 산다.

그도 나도 비가 쏟아져도 밤이 늦어도 걱정 않는 나의 존재감, 밥 먹을 때만 필요한 존재가 싫다 싫어!

 

나는 내가 착하디 착하고 순하디 순한 여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람이 변해도 나만은 변하지 않을 줄 알았다.

무엇이 날 변하게 했을까.

무엇이 나를 악녀로 만들었을까.

나는 왜 악녀가 되었을까.

그이는 소크라테스도 아닌데 나는 왜 악녀일까.

난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들꽃 조차 아니고 향기도 없다.

날 소중히 길들이는 어린왕자도 없다.

나는 왜 악녀가 되었을까…


<출처 : 광명시하안도서관 빛누리독서회 제22집>

         작가 박선영 프로필         

- '카페 블랙 씨(CAFE BLACK SEA)' 대표

- 광명시하안도서관 '빛누리독서회' 회원